{"axis":"file_15151122","total":199,"total_source":"catalog","limit":20,"offset":0,"items":[{"record_key":"h:0193c6c35fcef6076f8ce34ce284d99f","as_of":"2025-11-05","payload":{"제목":"과학책은 ‘경이로움의 보고’다!","등록일":"2009-04-28","조회수":"3148","출판연도":"2009","칼럼 내용":"몇 해 전 연구를 위해 콜롬비아의대에 있다가 뉴욕에서 흥미로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텅 빈 지하철에 어떤 할아버지와 나란히 마주보며 타고 가는데, 그 할아버지 손에 하얀색 표지의 두꺼운 페이퍼백 한 권이 들려있었다. 문득 궁금해서 표지의 제목을 살펴보니, <스트레인지 뷰티>(승산·2004)라고 씌여 있었다. 이 책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머레이 겔만의 평전인데, 백발이 성한 할아버지가 지하철에서 물리학자의 전기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읽고 있는 책에 관심을 보인 내가 흥미로워서였는지, 할아버지는 내 옆자리로 슬며시 건너와 자신이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이런저런 소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책을 쓴 조지 존슨은 <뉴욕타임스> 과학담당 기자인데 평소 이 사람의 글을 좋아하지만 이번 책에는 머레이 겔만에 대해 솔직한(그래서 부정적인)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 ‘좀 잔인했다’는 논평으로 말문을 열었다. 넌지시 내 전공이 물리학이라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갑자기 신이 나서 속사포처럼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특히 ‘학계에서 머레이 겔만과 리처드 파인만 중에 누구를 더 천재라고 쳐주느냐’는 질문이 나왔을 때에는 마치 내가 물리학과 대학원생과 얘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지하철에서 할아버지와 나눈 15분 남짓한 대화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즐거웠지만, 미술관에서 일한다는 할아버지와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유쾌한 충격이었다. 과학책이라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읽어본 적이 없는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 여기며 사는 우리나라에서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과학자가 되어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학회에서 저명한 석학의 강연을 직접 듣는 것이다. 책이나 논문에서만 보던 대가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 그들의 음성을 통해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자의 노력을 생생히 전해 듣는 것. 학회에 참석하고 나면 학문적 열정으로 한동안 밤잠을 설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늘 그럴 수만은 없는 일.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과학책을 즐겨 읽는다. 책에는 과학자들의 향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과학기자 존 호건이 쓴 ‘과학의 종말’은 강연을 듣는 것보다 더한 ‘석학의 향기’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과학자에게는 무시무시하기까지 한 제목의 이 책은 우리가 과학을 통해 자연에 대한 궁극의 답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고, 저명한 과학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답을 얻고자 한다. 우주는 어떻게 탄생됐으며, 생명의 기원은 무엇인가? 아직 남아있는 문제들에 대해 과학은 어디까지 답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답을 할 수는 있는 걸까?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호킹, 마빈 민스키, 일리아 프리고진, 노암 촘스키 등 저명한 과학자들을 만나고 돌아온 과학 기자가 그들의 입을 통해 얻은 결론은 과학으로 궁극의 답을 얻겠다는 것은 순진한 몽상이라는 것. 그는 탐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지식들은 이미 과학에 의해 밝혀졌으며, 남아있는 문제들은 인간인식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들이라서 과학적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문제들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과학의 종말을 선언했다기보다 ‘과학에 대한 믿음의 종말’을 고하고 있는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런 과학책들은 교과서가 들려주지 않는 진실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과학자인 내게 학창시절 과학이 재미있었느냐고 종종 묻는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우리나라 과학 교과서가 재미있으면 그건 변태예요.”  교과서에는 자연의 경이로움이 없다. 그것을 탐구하는 과학자들의 열정도 읽을 수 없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그것을 탐구하는 과학자들의 열정이 없는 책은 과학책이 아니다. 그 안에 진실은 없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진정 과학이 알고 싶으면 과학책을 읽어보시라고 권한다. 그 안에 경이로움과 과학자들의 자연에 대한 열정이 담겨 있다. 만약 당신이 수많은 과학책을 읽고 과학도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제 과학책을 써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당신이 알고 있는 과학의 경이로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경험 또한 놀라운 것이니까.    유명한 과학저술가이자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 교수가 코넬대에서 강의를 마치고 나오다가 갓 조교수로 임용된 젊은 학자를 만났다. 젊은 교수는 학창 시절 칼 세이건 교수가 쓴 책들을 모두 탐독했다면서 어떻게 글을 쓸 시간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자신이 코넬대 교수로 와보니 수업 준비하랴 연구하랴 시간이 부족해서 도저히 책을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칼 세이건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도 남는 시간에 책을 쓴 건 아니네. 내가 부족한 시간을 쪼개서나마 책을 쓴 이유는 자네같이 똑똑한 학생들을 천체물리학이라는 지옥에 빠뜨리게 하기 위해서지.”  나는 칼 세이건의 유머러스한 대답 속에서 ‘과학자들이 왜 대중과 소통해야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예나 지금이나 과학자의 길은 사회적인 부나 명예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많지는 않더라도 과학자의 길을 걷겠다는 학생들은 모두 ‘우주의 기원을 밝히고 생명현상의 비밀을 벗겨내기 위해 일생동안 탐구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근사한 삶 중 하나’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나도 그 중 하나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지하철에서 물리학책을 읽는 노인을 만날 수 있는 세상이다."},"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04dc8eeb691d5e9187c9e94a2a9325db","as_of":"2025-11-05","payload":{"제목":"조용하고 의연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등록일":"2013-04-15","조회수":"1796","출판연도":"2013","칼럼 내용":"어쩌다 깊은 산중의 절에 있으면 너무나 고요하고 적막하여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시끄러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소리를 질러댑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경우를 볼까요? 모두가 자기 이야기만 하려 하지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미션이 주어지면 서로를 속이고 무리를 지어 다니며 자신에게 유리한 방도만 찾으려 합니다. 물론 오락프로그램의 성격에 비춰볼 때 어느 정도 용인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이미 그 정도가 넘었다 싶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모방하는 대부분의 오락 프로그램들이 그런 방식으로 짜여집니다.   미국의 문화역사학자 워런 서스먼은 이런 현상을 ‘인격의 문화에서 성격의 문화로’ 바뀐 탓으로 진단합니다. 인격은 형성하는 데에도, 그 값을 알아채는 데에도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성격은 짧은 시간에 파악됩니다. 그것을 성공으로 여기는 문화가 만연하게 되니 모두가 소리를 질러댑니다. 소리를 지르는 건 상대가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06416cb7c173671221522c9e39279e80","as_of":"2025-11-05","payload":{"제목":"창의력 Book돋우는 책 읽기","등록일":"2014-04-17","조회수":"164549","출판연도":"2014","칼럼 내용":"불이 꺼집니다. 영사기가 돌아갑니다. 가슴이 콩콩 두근거립니다. 영화가 시작합니다. 때는 13년 전인 2001년. 저는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를 보기 위해 시사실 안에 있습니다. 그 영화를 번역하기 위해서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반가워서 놀란 것입니다. 영화의 앞부분만 보고도 저는 “앗!” 하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왜 그랬느냐고요? ‘몬스터 세상’에 사는 괴물들이 그들 도시의 동력원인 인간 아이들의 비명을 채집하기 위해 ‘인간 세상’을 방문한다는 설정을 보곤 놀라워했던 것이지요. 그게 왜 놀랄만한 일이었느냐고요? 괴물이 방문을 통해 들락날락 하니까요. 그 장면에서 제가 옛날에 영문 판으로 읽은 판타지 소설이 떠올랐기 때문이랍니다. 과연 어떤 작품일까요? 그걸 공개하기 위해선 그 판타지 소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먼저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이 판타지 소설의 지은이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였습니다. 그가 조카들을 위해 지은 이야기에는 마법의 옷장이 등장합니다. 아이들은 숨바꼭질을 하다가 옷장 너머의 세상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그곳은 겨울 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마녀가 저주를 내린 것이지요. 이 판타지 이야기의 제목은 <나니아 연대기>입니다. 지은이의 이름은 C.S. 루이스이고요.\""},"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0697c140c265fd4958c45e14dae6701d","as_of":"2025-11-05","payload":{"제목":"‘바보’의 독서법","등록일":"2011-04-06","조회수":"1605","출판연도":"2011","칼럼 내용":"필자는 글을 많이 쓰는 편이다. 여기 저기 정기적으로 써 주어야하는 글들도 제법 많거니와 저술 역시 해마다 적어도 한권씩 출간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디서 그런 글들이 나오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천편일률적으로 답한다.    “학창시절부터 게걸스럽게 읽어둔 책들에서 나옵니다.”    사실 필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까지는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달동네에서 살던 시절이라 주변에서 책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정말 ‘게걸스럽게’ 책을 읽어댔다. 지식과 지혜에 대한 필자의 탐욕은 대학교 시절, 장교로 근무했던 해군 복무시절 가파르게 상승했다가 신학 공부를 위한 유럽 유학 시절에 절정에 달했다. 필자는 장르를 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책을 마구 읽어댔다. 그러다보니 독서에 관한한 나름대로 내공이 쌓였다.      필자는 책을 빨리 읽는다. 어쩌다 서점을 한번 들를 때면 대충 쭉 훑어보는 것으로도 새로운 정보를 한 보따리 얻어온다.    필자가 가장 공들여 읽는 부분은 책의 서문과 목차다. 에필로그가 있는 경우에는 그것도 꼼꼼하게 읽는다. 일단 이렇게 하고 나면 글의 전체 윤곽이 짐작된다. 글을 많이 써본 필자의 경험상 제대로 쓴 글이라면 책의 주요 개념은 서문, 목차, 에필로그 속에 녹아 있음을 안다.    책의 본문을 읽을 때는 대각선으로 읽되 일일이 다 읽지 않는다. 한 눈에 들어오는 단어들을 순간적으로 연결시켜보면 그 페이지의 글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지 아닌지 금세 판단된다. 그리고 핵심문장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육감적으로 집어낸다. 그 대목은 ‘줌인’(zoom in)시켜 확실하게 읽고 넘어간다. 그 대목의 이해는 방금 한눈에 들어왔던 단어들과 연결시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진행된다. 이 모든 과정은 단 몇 초 안에 이루어진다.    물론, 이런 독서법의 위험과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효율적이며 과학적이기도 하다.    두뇌생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이 독서법은 ‘우뇌’를 많이 활용한 독서법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위의 이야기에서 핵심 문장을 ‘줌인’시켜 읽는 것만 ‘좌뇌’ 독서에 해당하고, 나머지는 모두 ‘우뇌’의 연상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시킨 독서법인 것이다.     필자의 독서법에서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특징은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며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를 ‘바보’ 독서법이라고 부르고 싶다.    바보의 특징은 자꾸 묻는다는 것이다. 바보가 질문을 퍼붓기 시작하면, 웬만한 사람은 금세 나자빠진다.    “이건 뭐예요?”   “이건 왜 이래요?”   “이상하다! 왜 꼭 그래야만 해요?”   바보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바보는 ‘답’보다 ‘물음’을 즐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보는 기발한 ‘답’으로 우리의 배꼽을 터트리고, 끊임없는 ‘물음’으로 우리를 넉다운시킨다.    독서도 일종의 배움이라고 본다면, 독서에서 물음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세계 인구의 0.25%(1,330만 명) 남짓한 유다인이 노벨 경제학상은 총수상자의 41%, 의학상은 27%, 물리학상은 25%를 차지할 만금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한 배후에는 질문식 교육법이 있었다. 유다인 부모들은 학교에 다녀오는 자녀들에게 “오늘 학교에서 선생님의 물음에 대답 잘했니?” 하고 묻는 대신에 “너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무슨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물음을 던지는 습관 하나가 첨단 지성을 양육해내는 으뜸 요소라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독서에 마치 바보가 그러듯이 온갖 물음을 총동원한다. 저자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비판도 하면서, 때로는 대안을 제시하며 사고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우뇌’ 독서법과 ‘바보’ 독서법, 그 어느 하나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청소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본다."},"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0847717a803c9fd98c311041851ebaba","as_of":"2025-11-05","payload":{"제목":"지식이 곰삭아 지혜로","등록일":"2008-11-27","조회수":"3305","출판연도":"2008","칼럼 내용":"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     지난 8월 미국순회강연을 돌면서 필자는 비행기를 거의 매일 탔다. 매일 한번 꼴로 잡혔던 일정을 소화하느라 부득불 장소 이동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 덕에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펼쳐진 장면에 필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단 비행기에 착석하면 책을 펼쳐들고 읽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대합실에서도 대다수 승객의 손에 책이 들려있었다. 필자는 감탄했다.    “아, 이래서 선진국이구나!”    사실, 이와 비슷한 장면을 필자는 일본의 전철 안에서도 목격한 적이 있다. 일단 자리에 앉으면 어디서 나왔는지 손에 책이 한 권씩 들려져 있었던 것이다.     국내에서도 강의를 많이 다니는 필자는 비행기나 열차를 많이 타는 편이다. 하지만 책 읽는 승객은 훨씬 드물게 만나는 편이다. 안타까운 현상이지만 젊은이들에게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하다. 핸드폰으로 문자 날리는 모습은 많이 봤어도 책 읽는 모습은 가뭄에 콩 나듯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GNP 2만 불 턱걸이에서 용을 쓰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경제 현실이다. 3만 불 시대를 꿈꾸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경제논리가 아니다. 필자는 GNP 3만 불은 경제, 문화, 민도 등이 어우려져 이뤄내는 종합예술의 결과치라 생각한다. 그 가운데 ‘독서’가 아주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고 본다.   무차별 잡독의 효과     대학시절 필자는 참 책을 많이 읽었다. 과외공부 선생을 하여 몫 돈이 생기면 으레 광화문과 종로를 들러 ‘한 보따리’씩 책을 사들고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된 심정으로 귀가하곤 했다. 물론, 한 달이 가기 전에 금세 해치웠다.    해군 장교로 복무했던 군 시절에는 주머니 사정이 더욱 두둑해져서 책 읽는 재미가 한층 더 쏠쏠하였다. 2년차가 되면서부터는 집에서 출퇴근 할 수 있게 되어 단골로 들르던 앞의 두 곳에 더하여 명동의 성바오로 서원을 즐겨 다녔다.    그야말로 책을 엄청 읽었다. 장르는 폭넓었다. 문학, 철학, 자기계발, 그리고 종교 등 필자의 관심을 끄는 주제에 따라서 경계를 넘나들며 책을 읽었다.     그 때는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좋아서 책을 읽었지만, 이렇게 읽어둔 책들은 훗날 필자가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유학을 가서 신학을 전공할 때에도 탄력 있는 사유에 도움이 되었다. 물론, 이 시기 필자는 이미 그 이전에 읽어둔 책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또 나아가 영성, 심리학, 사회학 등의 분야 책들을 폭넓게 읽으며 책 읽는 낙을 즐겼다.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지 1년도 안 되어 필자는 B형 간염으로 1년 6개월간 모든 것을 놓고 쉬어야 했다. 이 시기 필자는 건강과 의학 관련 서적을 또 마구잡이로 읽었다.     이렇게 필자는 여러 분야의 책들을 무차별로 읽었다. 한 마디로 잡독이었다.    그 효과는 지난 2007년과 2008년 한국 출판계를 강타한 공전의 베스트셀러 『무지개 원리』를 저술할 때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무지개 원리』는 자기계발 서적에 속한다. 자기계발이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폭넓고 정확한 이해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자기계발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약 30년에 걸친 잡독의 집적물들이 필자의 의식 안에서 곰삭아 기막히게 발효 엑기스로 추출되었던 것이다. 일곱 가지 무지개 원리로 말이다.    이것이 책을 많이 읽어본 사람, 그리고 전문가적 통찰력이 있는 분들일수록 『무지개 원리』를 읽고 감탄을 금치 못하는 이유다. 이는 교만이 아니고 사실이다. 그 유명하다는 미국판 자기계발 서적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라. 학문적으로도, 실용적으로도 자신 있다.   무조건 읽으라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에게 권한다. “무조건 책을 읽으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에게 고한다. “책을 읽지 않는 민족은 망한다!”  세계를 호령하는 탄탄한 내공의 비결은 두말할 것 없이 정보다. 독서를 통하여 마음의 항아리 속에 담긴 지식은 시간이 흐르면 곰삭는다. 그리하여 거기서 지혜의 국물이 우러난다. 그 지혜가 바로 꿈의 성취와 행복을 위한 명약인 것이다."},"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086532bc650463bc799cdf8cd09abd12","as_of":"2025-11-05","payload":{"제목":"독서, 글쓰기 그리고 기자","등록일":"2012-07-13","조회수":"1763","출판연도":"2012","칼럼 내용":"중앙일보에서 신문활용교육(NIE)을 담당한 탓에 기자의 꿈을 키우는 ‘학생기자’들과 이야기 할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뭘 잘해야 기자가 될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죠. 이 칼럼은 어쩌면 그 꿈을 키우는 후배님(?)들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먼저 고백하자면 저는 첫 직장 박차고 나와 여기저기 무턱대고 원서 집어넣다 우연히 기자가 되었습니다. 글쓰기 실력은 당연히 빵점이었는데, 다행이 기사쓰기 시험 없이 신문사엘 들어갔습니다. 어떻게요? 세계화 시대에 유럽 출신 석사가 한 명쯤 필요하다는 사장님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글로벌리제이션이 유행일 때였으니까요. ‘국제전문기자’란 보기에도  멋진 타이틀을 달고 입사를 했습니다.    덕분에 고생한 건 신문사 선배들이었습니다. 사장이 뽑아 편 집국으로 보낸 작자가 시쳇말로 ‘글이 안 되는 놈’이었으니까요."},"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0cc2bac4bd2708f212821a17d1c499d5","as_of":"2025-11-05","payload":{"제목":"때로는 우리 생애에 블랙홀 같은 책을 만나기도 한다","등록일":"2017-12-05","조회수":"579","출판연도":"2017","칼럼 내용":"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으로부터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책에 대해 칼럼을 써 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때 머릿속에서 수많은 책이 스쳐 지나갔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책을 좋아해서 지금은 그림책 작가가 된 나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책이 내 인생에 영향을 끼쳤으며, 또 얼마나 많은 책이 내 손을 탔겠는가!  아주 오래전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림책이 귀했던 1970년대에 계몽사 세계명작동화전집에서 『무민 골짜기에 나타난 혜성』을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들에게 매료되어 날마다 종이 위에 캐릭터를 따라 그리면서 즐거운 상상 놀이를 하곤 했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도 그랬다. 주인공 남매가 우연히 옷장 안으로 들어가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는 내용이 무척이나 놀랍고 신선했을까? 옷장 안을 기웃기웃하며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생기길 바랐다. 그리고 주인공이 냉장고 안으로 들어가 얼음 나라로 여행하는 이야기를 끼적여 보기도 했다. 모두 6~7살 때 얘기이다. 그러다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어른이 되었을 때 또다시 내 인생을 뒤흔든 메가톤급 책을 만났다. 바로 『해리 포터』 시리즈다! 우와, 세상에 이런 괴물 같은 책이 있다니! 하루 만에 후다닥 다 읽었다! 그렇게 해서 읽기 시작한 『해리 포터』 시리즈 원서 7권이 지금도 내 책장 한가운데에 자랑스럽게 꽂혀 있다. 난 이 책들을 볼 때마다 두 눈을 번뜩이며 밤새워 읽었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이렇게 책은 나와 함께하면서 나를 상상과 환상의 세계에서 뛰어놀게 했고, 몰입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으며 밥줄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때로는 머리를 쥐어뜯게 만들기도 했는데……. 지금 내가 소개하려는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좀머 씨 이야기』. 이 책은 신기하게도 책 제목과 표지는 기억나는데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책으로 이 책이 떠올랐을까? 궁금한 마음에 20여 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기로 했다.   나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 책 주인공은 해맑고 공상하길 좋아하는 일곱 살 남자아이이다. 나무타기를 잘해서 나무 위로 올라가 바람 소리, 잎사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풍경을 감상하곤 한다. 그런 주인공 아이에게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괴팍한 이웃 좀머 씨이다. 좀머 씨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 년 열두 달, 하루도 빠짐없이 밖으로 쏘다닌다. 하지만 그가 어디를 가는지, 무엇 때문에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좀머 씨는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이 마을 저 마을로 수많은 발자국을 남기지만 이웃들에게 그는 단지 투명인간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아빠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와 우박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나운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걸어가는 좀머 씨를 발견한다. 아버지는 좀머 씨에게 차에 타라고 권유하지만 좀머 씨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그러다가 죽겠어요!” 아버지의 절박한 외침에 마침내 좀머 씨가 분명한 어조로 대답한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그로부터 1년 뒤, 아이는 좀머 씨와 또다시 극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그날은 아이에게 정말 운 나쁜 힘든 날이었다. 피아노 레슨에 늦은 데다가 연습을 하지 못해서 피아노를 엉망진창으로 치고 말았다. 게다가 선생님이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코딱지가 하필 피아노 건반에 달라붙을 건 또 뭐람. 아이가 더러운 코딱지를 피해 다른 건반을 누르는 바람에 결국 선생님의 화가 폭발했다. “네 물건 싸 가지고 꺼져 버려!”  세상이 원망스러운 아이는 죽기로 결심하고 나무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뛰어내리려고 하는데……. 아뿔싸! 나무 밑에 좀머 씨가 있는 게 아닌가! 땅바닥에 드러눕더니 일 초도 안 되어 고통스러운 한숨을 쉬며 바로 일어나는 좀머 씨. 평생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사람을 본 아이는 고작 코딱지 때문에 뛰어내리는 게 우스워 보여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5, 6년이 지난 어느 날, 아이는 저녁 무렵 집으로 가는 길에 호수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좀머 씨를 보게 된다. 너무나 당혹스러워서 돌처럼 굳어 버린 주인공. 도와 달라고 소리치지도 못하고 좀머 씨의 죽음을 그저 침묵하고 만다.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간청하듯 절규했던 좀머 씨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 이런 내용이었어.’ 책을 덮으면서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왜 이 책이 내 마음을 건드렸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때 난 이 책을 어린아이의 성장소설로 생각하면서 주인공을 응원했던 것 같다. 나도 주인공처럼 공상가에다 소심하고 부끄럼 많은 아이였기 때문에 나의 유년 시절이 떠올랐을 게다. 그래서 아이가 같은 반 여학생의 솜털 많은 목덜미나 귓불에 입을 갖다 대는 꿈을 꿀 때는 나도 한때 짝사랑한 적 있는 남학생을 떠올렸을 테고, 신경질적인 피아노 선생님한테 차마 코딱지가 검은 건반에 묻었다고 말하지 못하고 쩔쩔 매는 부분에서는 충분히 공감하면서 깔깔대고 웃지 않았을까?   생각과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책 그런데 사십 대가 되어 다시 읽어 보니 좀머 씨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아니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고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스스로를 밖으로 내몰았던 좀머 씨. 그는 진정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을까? 삶이었을까, 죽음이었을까? 아님 고통스러운 자신의 과거였을까? 작가는 끝까지 좀머 씨의 과거를 짐작할 만한 어떠한 단서도 흘리지 않았다. 마치 독자들에게 알아서 상상하라는 듯. 그래서 이 책은 두께는 얇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주제도 수수께끼 암호처럼 애매모호하다. ‘네 이웃의 죽음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마라.’, ‘타인의 삶에 간섭하는 오지랖을 떨지 마라!’ 그런 건가? “도대체 이 책 주제가 뭐예요?”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게다가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질문이 와글와글 댄다. 주인공 아이는 왜 좀머 씨를 붙잡지 않았을까?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게 맞을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좀머 씨를 강하게 붙잡아 주었다면 좀머 씨의 삶이 달라지진 않았을까? 우리는 타인의 삶에 어디까지 끼어들어야 할까? 간섭과 방관의 균형점이라는 게 있기나 한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안갯속을 헤매는 것 같고 고구마 백 개를 한꺼번에 먹은 듯 답답해진다. 밤 새워 침 튀겨 가며 토론해 봐도 딱히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헤어 나올 수 없는 블랙홀 같은 책. 이 책은 독서토론 도서로 딱이다!  난 이 책을 20년 뒤에 다시 읽어 볼 생각이다. 내 삶의 경험치가 너무 얄팍해서 답을 얻지 못하는 거라면 20년 뒤에 다시 읽어 보면 그땐 답을 풀 수 있는 있는 지혜가 생기지 않을까? 그땐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여전히 수많은 생각이 가지를 치며 이리저리  뻗어나간다. 빤한 정답이 보이지 않는 책, 생각과 마음을 툭툭 건드려 두고두고 곱씹게 만드는 책. 좋은 책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0d09167f57203d662e0d99a215593908","as_of":"2025-11-05","payload":{"제목":"어린왕자, 나를 ‘길들이다’","등록일":"2012-08-23","조회수":"4687","출판연도":"2012","칼럼 내용":"어디선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문구를 가지고 사람들은 다양한 해석을 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문구가 독서의 중요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독서를 통해서 인지하고 사고할 수 있는 언어가 늘어나게 되면 내가 느끼고 깨닫게 되는 세계도 확대되기 때문이다. 나는 현직에서 국제회의통역사로 활동할 때부터 지금까지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프랑스, 영어 뉴스를 보고 듣는 것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있다.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내 사고는 깊어지고 어휘는 풍부해지며 동시에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세계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 중 내 삶의 지침이 되었고 나를 풍성하게 해주고 있는 책이 있는데, 바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이다. 몇 번을 읽어도 색다른 느낌을 주면서 마음에 짠하게 스며드는 책이자 나의 잠언이기도 하다.  어린왕자: “‘길들여진다’는 게 무슨 뜻이야?” 여우: “그건 너무나 자주 소홀히 다루어지는 행위야,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지.” 어린왕자: “관계를 맺는다고?” 여우: “넌 아직도 나에게는 수십만 명의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작은 소년일 뿐이야. 난 네가 필요 없고, 네 쪽에서 보면 네겐 내가 필요 없지. 네게 난 수십만 마리의 다른 여우와 다를 바 없는 한 마리 여우일 뿐이야.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린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지. 나에게 넌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되고, 나 역시 네게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되는 거야.”\"\"\"\"\""},"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0fdd01f7ee7efcacea365dbedf090989","as_of":"2025-11-05","payload":{"제목":"책 한 권이 선사한 아름다운 음악의 향기","등록일":"2007-06-15","조회수":"3594","출판연도":"2007","칼럼 내용":"참으로 맑고 싱그러운 유월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활짝 열고, 나는 음악을 틀어 놓습니다. KBS FM 클래식 채널이나 클래식 CD를 듣습니다. 내 평생에 음악, 특히 고전음악은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 5번을 듣고 있습니다. 웅장하고 빼어난 세계를 건축하는 듯한 구성의 아름다움은 물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신의 선율 같은 피아노의 울림은 우리 집 거실과 정원을 가득 채우고도 남습니다.  나는 세기를 이어오는 수많은 음악가들 중에서도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음악을 단연 좋아합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면서 이 세상에서의 곤고하고 복잡한 일들을 말끔히 씻어내기도 하고, 혼탁해진 마음을 새롭고 맑은 영혼으로 정화시키며 샘솟는 희망과 창조적인 생각들로 가득 채우기도 합니다. 그래서 음악은 내게 주신 하늘의 축복이라고 늘 생각하곤 합니다.   중학교에 다닐 땐 고전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기회만 있으면 밤늦게 라디오에서 고전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점차 그 아름다운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봄 날 학교 도서관에서 프랑스의 너무나 유명한 작가이며 반전 운동가인 로맹 롤랑의 소설 『장크리스토프』를 찾아내어 읽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롤랑이 당시 적대 국가였던 독일이 낳은 불세출의 음악가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생애를 그린 것이었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을 향한 거의 순교자적 혹은 구도자적인 생애와 불멸의 영감으로 작곡한 위대한 음악에 관한 얘기는 물론, 그의 어렵고도 고뇌에 찬 실생활과 인간관계들을 차원 높은 시야로 그려나간 이 글은, 나의 사춘기의 불안정한 정신과 육체에 폭포수 같은 물줄기로 덮쳐왔습니다.  막연히 좋아하고, 또 어떤 곡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듣던 베토벤의 음악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새롭고도 찬란하고 또 위대한 정신으로 내 가슴을 엄습해왔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로맹 롤랑의 이 책과 함께 인간의 정신과 남과 여의 평등하고도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아끼는 절절한 얘기로 가득 찬 『매혹된 영혼』을 밤 새워 읽은 후, 숭고한 음악 예술에 대한 애착과 양성간의 편견과 오만을 극복한 인간 정신의 너그러움을 깊게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던 기억은 지금도 내 가슴을 뛰게 합니다.  나는 롤랑의 『장크리스토프』를 수십 년간 일하고 가르쳤던 대학의 제자들에게 꼭 읽기를 권하고 또 그 내용을 간추려 얘기해 준 일이 여러 번 있습니다. 그 한 권의 책이 나의 내면에 용해되어 늘 나와 동행하는 것을 문득문득 느끼고 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어느 해 봄 날, 아카시아 향이 바람결에 실려 오는 캠퍼스 길에서 아리따운 후배 여학생과 우연히 함께 걷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음악 얘기가 나오고, 서로 좋아하는 음악가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여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음악 소설이라고 이름 붙이기에 딱히 적절하지는 않지만, 불세출의 음악가에 관한 생애를 소설로 쓴 『장크리스토프』를 읽었냐고. 그 여학생은 아직 읽지 못했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헤어진 후에 그 소설책과 『매혹된 영혼』을 사서 선물했습니다. 로맹 롤랑의 이 두 책은 우리가 인연이 되어 서로 깊이 교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아름답던 젊은 날의 추억어린 얘기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카시아 향이 내 가슴에 스며들곤 합니다.  책 한 권을 잘 선택하여 읽은 일이 계기가 되어 한 사람의 일생에 가장 소중한 내면의 자산이 되어준 음악을 만나고, 이를 통해 인간 감성의 가장 아름다운 경지와 벗할 수 있게 되고, 기쁨과 슬픔도 조용하고도 품위 있게 소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책을 잘 선정하여 읽는 일이 얼마나 우리에게 축복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일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청소년 여러분, 당장 보이는 일들에 너무 집착하여 깊이 있되 넓고 높기도 한 인간정신을 지니는 일인 독서에 소홀하거나, 가슴에 한 줄기 빛으로 비쳐오는 아름답고도 향기로운 끝 모를 샘 같은 고전음악을 가까이 하고 듣는 일에 게으르지 않는 귀하고 소중한 여러분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13d199b7560e0cba1880df54dbed2bb3","as_of":"2025-11-05","payload":{"제목":"감정저축, “좋아요”","등록일":"2017-04-05","조회수":"720","출판연도":"2017","칼럼 내용":"책은 나의 오랜 친구입니다. 책과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두 권의 그림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쾌걸 조로』와 『백설 공주』. 이 두 권의 그림책을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집에 책이라고는 오로지 두 권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어서 읽었다기보다는 심심해서 뒤적뒤적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뒤적뒤적하기만 했는데, 신나게 갖고 놀았던 갖가지 장난감보다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래서 책을 나의 가장 오랜 친구라고 말합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읽었던 책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책은 『해와 달의 합창』입니다. 저자와 내용이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여자주인공에게 가졌던 아주 아린 느낌은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그 주인공을 생각하면 울먹울먹해지면서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여주인공이 불쌍했고, 착한 마음을 잃지 않고 나쁜 길로 가지 않은 것이 눈물 날 정도로 기뻤던 것 같습니다. 착한데 너무 힘들어서 나쁜 길로 가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고 속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이야기의 주인공을 친구처럼 가깝게 느꼈나 봅니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주로 소설을 읽었습니다. 작가 황순원, 이효석, 루이제 린저, 토머스 하디, 펄 벅의 소설을 읽으면서 수많은 상상을 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여러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슬픔에 젖거나 우쭐해지기도 하고, 아파서 죽거나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야말로 혼자서 ‘소설을 썼던’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내가 주인공인 나의 소설은 아무도 읽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밀이 보장되고,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이 없어 편하게 상상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책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도 질투하지 않고 비웃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주면서, 나를 다양한 장르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중학생 때까지는 책을 아주 많이 읽은 것은 아닙니다. 주로 방학에 할 일이 없어서 집에서 뒹굴뒹굴하면서 읽었던 책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감동받고, 그 감동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책은 서서히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몇 권의 책으로 시작했던 책의 감동은 점점 더 많은 책을 읽게 했고, 때로는 3~4일을 밖에 나가지도 않고 책을 읽게도 했습니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어서 친구들과 책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감동은 더욱 커졌습니다. 함께 주고받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더 친해지고, 특별한 세상에 함께 와 있는 것 같아 서로 행복해했습니다.   책이 주는 감동과 행복을 경험했기에 지금은 늘 책을 갖고 다니면서 틈틈이 한 줄이라도 읽고, 종종 대여섯 권의 책을 한 번에 사서 책 속에 빠져 보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책을 읽으면서 감동받고, 그 감동은 자동적으로 마음에 저축이 됩니다. 그리고 힘들거나 외롭고 심심할 때는 마음에 저축한 감동을 찾아서 다양하게 사용합니다. 책의 감동 효과는 꽤 좋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경험하는 감동저축! 그것은 특별히 청소년기에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마음의 저축입니다. 2017년 어느 날 뒹굴뒹굴하면서 읽은 책의 감동이 마음에 저축되어 어느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특별한 선물을 줄 수도 있습니다. 우연히 떠오른 책 속의 글귀, 어느 날 유난히 생각나는 책 속의 주인공, 형광펜으로 밑줄 그었던 책의 제목, 내가 사랑하게 된 작가로 인해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달빛 고운 어두운 밤, 해가 떠오르는 신선한 아침,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어떤 순간에도 책은 우리에게 필요한 특별한 감동을 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손에는 무엇이 있나요? 그것이 책이라면 진정 “좋아요.”입니다. 책과 친구가 되어 책과 가까이 지내고, 책이 주는 따뜻하고 신기하고 가슴이 뻐근해지는 감동을 꼭 경험해 보세요. 두 가지 방법을 함께한다면 책 읽는 감동이 더욱 진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는 책을 읽기 시작한 날짜와 자신의 이름을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감동받은 글귀에 진하게 밑줄 긋는 것입니다. 내가 책에 남긴 ‘날짜, 이름, 밑줄’의 흔적이 훗날 여러분의 삶에 감동을 더하여 줄 거랍니다.    백종화는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아동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화여대 대학원 아동학과 겸임교수로 있으며, 백종화심리상담센터에서 성장과 치유의 심리상담을 하고 있다. SBS TV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전문자문위원으로 2005~2015년 10여 년간 활동했고, 저서로 『공부는 나의 힘』, 『초등생 성적보다 공부습관이다』, 『정신건강론』 등이 있다."},"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14a0d8b59e66ab825e6d9db69ff82e0a","as_of":"2025-11-05","payload":{"제목":"물리학 책이 정치학도에게 미친 영향력","등록일":"2009-09-07","조회수":"2243","출판연도":"2009","칼럼 내용":"나와 함께 같이 늙어가는 책을 갖기는 쉽지 않다. 어릴 적에 좋아했던 책은 성장하면서 책장에서 솎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향을 떠나 객지를 전전하는 ‘신-유목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로서는 수십 년을 함께 하는 애장서적을 갖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내게 있어 프리초프 카푸라 교수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원제; The Tao of Physics)>이야말로 그런 소중한 책 가운데 하나다. 책 뒷 갈피에 ‘1979년 구입’이라고 씌어 있으니, 30년을 함께 살아온 셈이다.   그동안 옮겨 다닌 하숙집이 몇 군데였으며 또 여기저기 전전한 자취집은 몇 곳이었던가. 입대하기 위해 집으로 부쳤던 짐 속에 이 책이 들어 있었기에 오늘까지 남아있게 된 것일 터요, 또 신접살림을 차렸던 좁은 집의 서가에도 이 책이 끼어있었기에 지금껏 내 손에 남아있는 것이리라. 오늘 서가에서 이 책을 뽑아 살펴보니 구입할 때 반질거렸던 책표지는 너덜너덜해져 투명테이프로 테를 둘렀고, 기름기 돌던 종이들은 누렇게 뜨고 푸석거려 한 장씩 넘기기가 위험스러울 판이다.   지금도 책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 책을 만났을 때의 감회는 아직도 새롭다. 정치학과 학부생이던 나에게 현대물리학 내용도 생소했지만 동양사상 역시도 낯설었던 터였다. 당시 서양학문에 들떠있던 정치학도에게 현대물리학은 서양과학의 핵심이자 또 우리가 지향해야만할 최첨단 학문으로 와 닿았던 것 같다. 다만 ‘뉴우튼 물리학’조차 이해하기 어려웠던 ‘과학치(科學痴)’에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니 하는 현대물리학은 꿈속의 꿈 놀음이었을 따름이었다.   반면 동양사상은 빨리 내다 버려야할 구닥다리 유물이었다. 동양사상은 ‘서구화·근대화’로 나아가는 우리네 발목을 잡는 지긋지긋한 애물단지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현대물리학은 몰라서 애가 타는 대상이었다면 동양사상은 몰라도 전혀 거리낄 게 없는 것이었다. 한데 극단적으로 모순된 두 학문분야가 병열접속사 ‘~과~’로 연결되어 덤덤하게 서점에 진열되어있는 그 ‘무심함’이 퍽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때로선 적지 않은 책값이었던 거금 ‘삼 천 원’을 들여,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의 책을 사게 만든 동기라면 신기함 이외에는 있을 것 같지 않다.    하숙집으로 돌아와서 책장을 넘기면서 놀라웠던 점은 현대물리학은 그렇다 쳐도 거기 인용된 불교사상, 노자사상의 원문들이 거의 처음 접하는 내용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더욱 놀라웠던 점은 서양 물리학자인 저자(카푸라)의 동양사상에 관한 소양이 고작 고전을 인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사상의 근원을 천착할 정도로 깊다는 느낌이었다. (하긴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물리학과 동양사상을 비교 연구할 수 있었겠는가.)   실로 부끄럽고도 놀라운 체험이었다. 내가 디딘 내 삶의 내력조차 알지 못하는 주제에, 아니 서양 사람이 내 삶의 뿌리를 도리어 더 깊이 아는 터수에 무슨 서양학문이랴 싶었던 것이리라. 그 후 같은 저자의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범양사)라든지, 주커브의 <춤추는 물리>(범양사) 그리고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위시한 자연과학 서적들이 내 서가를 조금씩 채워가게 된 계기는 오로지 이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에서 마련된 것이었다.   더욱 결정적인 점은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후, 오늘 나는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네 사회과학 분야가 지나치게 서양학문 일변도라는 사실에 목말라했던 갈증의 뿌리도 아마 카푸라 교수와의 만남에까지 가닿을 것 같고, 또 한문을 배우려고 서당문을 두드리게 만든 원동력도 그러했던 것 같고, 급기야 다산 정약용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게 만든 무의식도 그러하리라 싶다.     그동안의 내 공부 길은 현재와 과거, 서양과 동양, 그리고 정치학과 인문학 사이의 샛길이었던 듯 싶은데 아마 이 팍팍하면서 힘든 샛길을 걷도록 만든 힘도 상반되는 두 학문세계를 매끄럽게 연결지어 경탄케 했던 카푸라 박사의 글쓰기에서 큰 영향을 입었던 것 같다. 정녕 이게 사실이라면 젊은 시절 난데없이 만난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인생 행로을 결정짓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를 보여주는 또 한 사례라고 할 수 있으리라."},"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163b0859bb7320a6fb9c742c1c1fb11f","as_of":"2025-11-05","payload":{"제목":"책이 나에게 말했다","등록일":"2007-04-30","조회수":"3764","출판연도":"2007","칼럼 내용":"책이 나에게 말했다.  밤송이의 가시는 누구에게나 아픈가. 알밤에게도 가시가 정말로 아픈가. 당신은 무엇을 기준으로 말했는가.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당신은 말했는가. 빵보다 펄럭이는 정신이 훨씬 더 중요한 거라고  당신은 목울대를 세웠는가. 요금이 제일 싼 기차를 타고 가려고  세 시간이 넘도록 기차를 기다리는  가난한 할머니의 지친 얼굴 앞에서도  당신은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급식비를 내지 못해 점심을 먹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의 슬픔 앞에서도 당신은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맨드라미 씨만큼이라도 말을 아끼지 않겠는가.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람을 보고  당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는가.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그에게 함부로 말했는가. 그의 어린 시절 아픔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바람난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빠는 다른 여자를 집 안으로 불러들이고,  툭하면 대문을 걸어 잠그고. 그 추운 겨울 밤,  밤이 늦도록 거리의 칼바람을 맞으며 어린아이가 증오했을 세상을  당신은 맨드라미 씨만큼이라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옳고 그름에 대한 당신의 기준은 무엇인가. 법인가, 책인가, 성경인가, 아니면 당신 자신인가. 철 따라 피어나는 꽃처럼 당신의 말은 정확한가. 모천으로 돌아오는 은빛 연어처럼  당신의 기준은 정확한가. 갈 곳을 정하지 않고도 소리 없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당신도 그냥 흘러갈 수는 없는가. 이해할 수는 없어도 사랑할 수는 있다고 소리 없이 침묵으로 말해 줄 수는 없는가.  당신은 왜 이기려고만 하는가.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싸움에 져주기 위해서는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맨드라미 씨만큼이라도, 작디작은 맨드라미 씨만큼이라도 당신이 져줄 수는 없는가.  당신의 가슴속에는 당신도 알지 못하는 용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당신도 알지 못하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당신의 용기와 사랑은 맨드라미 씨를 품어 주는 대지의 어머니보다  더 넓고 더 따스하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  책은 당신과 나를 위한 꽃밭입니다.  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책은 우리의 삶을 지켜 주는 경호원입니다. 창과 방패입니다.  살다 보면 상대방을 설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적절한 단어와 상황에 맞는 예화는  대화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열쇠입니다.  책이 밥 먹여 주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것입니다.  책은 밥 먹여 줍니다. 내가 글 밥을 먹어서가 아닙니다.  책은 말과 논리의 힘을 키워 줍니다.  책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나 설득력 있는 말이  다리 하나나 두 개를 건너면 밥도 되고 떡도 됩니다.  당신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쌀밥을 먹고, 채소를 먹고, 과일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대화를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감동을 줄 수 있는 단어와 예화들은 책 속에 무궁무진합니다. 정확한 단어와 정확한 예화는  대화의 중심으로 날아가는 화살입니다.  정확한 논리보다 더 많은 감동을 주는 것은 진실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진실을 말하는 데도 논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쉬운 단어만 쓴다고 해서  쉬운 문장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책은 나에게 진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책은 나에게 삶의 비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책이 나에게 가르쳐 준 비밀 몇 가지를  당신께도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도 잘 아시겠지만 말입니다.  당신이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사교성이 아주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대하면 상처받는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사랑을 주고 나서 내가 준 사랑을 기억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혹시라도 등을 돌리면, 당신의 가장 무서운 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인생의 법칙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섬처럼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책은 내게 말해 주었습니다.  나무와 나무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있어야 햇볕 때문에, 양분 때문에 서로 싸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뭔가를 주어야 한다는 것도 책이 내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사랑도 그렇고, 명예도 그렇고, 물질도 그렇고, 돈도 그렇습니다.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라고  부디 저를 나무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도 깨달음이지만, 아는 것을 다시 아는 것도 깨달음이라고  책이 내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책은 내 인생의 스승이었습니다. 나보다 세상을 먼저 살아간 사람들의  순정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세상이라는 징검다리를 먼저 건너갔습니다. 어느 징검다리가 흔들리는지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어느 징검다리에 이끼가 끼어 미끄러운지를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어느 징검다리 위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지도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책이 당신에게도  삶과 세상과 사람을 가르쳐 줄 거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책은 세상을 건너는 징검다리입니다.  독서는 당신의 꿈을 이루어 주는 징검다리입니다."},"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176500cffda2a247376454e8632063af","as_of":"2025-11-05","payload":{"제목":"오늘의 리더(Reader)가 내일의 리더(Leader)!","등록일":"2007-03-15","조회수":"4178","출판연도":"2007","칼럼 내용":"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전국적으로 ‘자유교양경시대회’가 열렸습니다. 정부에서 학년별로 교양도서를 선정하면 출판사에서 그 도서를 싼 값에 공급했고, 책을 읽은 학생들이 매년 학교별·시도별 대회와 전국대회에서 교양과 지식을 겨루었습니다. 학교에서 책깨나 읽는다는 학생들은 선정 도서를 닳고 닳도록 읽고 그 책들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며 경시대회를 준비했습니다. 독서를 원 없이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잘만하면 학교와 고향의 명예를 드높이는 주역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은 만사를 제쳐두고 책을 읽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선정된 교양도서 중에는 읽고 싶지 않은 책도 있었고, 경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부담감은 책을 읽으며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즐거움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동서양의 고전을 두루 섭렵했던 경험은 결과적으로 저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 책들을 통해 미래에 대한 비전을 만들고 세상을 통찰하는 지혜를 얻었으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품으며 성취해가는 의지력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회를 준비하며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던 친구들이 지금은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저와 달리 보는 즐거움이 가득한 TV와 VTR이 익숙한 영상세대, 최첨단 정보통신기기와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온라인 공간에서 뛰노는데 익숙한 디지털세대인 청소년 여러분이 문자로만 되어 있는 책을 읽는 것은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책의 미래, 활자 문화의 미래에 대해 암울한 전망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디지털의 도전이 거세게 일고 있는 다매체시대일수록 독서를 통해 쌓은 지혜와 지식은 더 큰 가치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에서 미래사회는 꿈, 감성, 그리고 창의성에 의해 움직이는 ‘감성 중심의 정보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많은 미래학자들이 우리 사회의 비주류였던 문화, 콘텐츠, 창조, 상상력, 감성 등이 미래사회를 이끄는 주류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단어들 속에 담긴 한 가지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독서입니다. 책을 읽는 것을 통해 무한한 창조력과 상상력이 생기고, 새롭고 창의적인 콘텐츠와 문화가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UCC(User Created Contents) 역시, 창조력과 상상력을 통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진정한 가치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의 측면에서 보면 독서는 즐거움, 인격수양, 지식과 정보의 습득이라는 이로움이 있습니다. “책은 한 권 한 권이 하나의 세계이다.”라는 영국의 시인 워즈워드의 말처럼, 우리는 책을 통해 다양한 세계, 다양한 사람, 다양한 사상을 접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가정, 지역, 국가를 넘어 다양한 세상을 경험할 수 있고, 공자나 맹자와 같은 지혜로운 사상가와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위대한 작가들과도 손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지혜의 샘은 책 사이로 흐른다.”는 영국의 속담처럼, 우리는 책을 통해 인류가 오랜 시간 동안 축적해온 삶의 지혜를 얻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찾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요즘은 대학입시에서도 독서와 논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독서의 주된 목적이 논술시험 성적을 잘 받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책을 읽은 청소년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하는 논술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독서는 생각의 힘을 키워줍니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됩니다. 최근에 발표된 한 유명대학 합격자들의 논술 성적 결과를 보면 입시학원에서 맞춤형 논술교육을 받는 것은 큰 효과가 없으며, 평상시 꾸준히 쌓은 독서의 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질서한 정보의 바다’ 속에서 의미 있고 중요한 정보를 선별해내는 능력 역시 평소의 독서습관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리더(Reader)가 내일의 리더(Lead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책을 사랑하고 책을 가까이하는 리더(Reader) 여러분! 책 읽는 여러분이 감성이 중시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Leader)가 될 것입니다. 미래 한국사회의 주역이 될 청소년 여러분! 책을 읽는 여러분에게서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 봅니다."},"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18706a3985395721e2aa35f7201e551c","as_of":"2025-11-05","payload":{"제목":"맛있는 책, 일생의 보약","등록일":"2010-06-07","조회수":"2754","출판연도":"2010","칼럼 내용":"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태어나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감을 때까지 늘 산을 보아야 하는 곳에서 중학교 1학년까지를 보내고 2학년 봄, 서울의 남쪽 관악산이 올려다 보이는 중학교에 전학을 했다. 담임선생님은 미술선생님이었는데 특별활동시간으로 산악반을 맡고 있기도 했다. 매주 화요일 6교시, 일주일에 단 한 시간 활동하는 그 ‘특별’한 ‘활동’은 내 취향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시간 내내 산과 학교 사이를 뛰어 오가는 산악반으로 정해졌다.   3학년이 되면서 비로소 내가 좋아하는 특별활동을 선택할 기회가 왔다. 나는 특별활동 산악반의 경험에 비추어 되도록 몸을 많이 움직이지 않는 특별활동반을 점찍었는데 그게 바로 도서반이었다. 도서반 담당 선생님은 특별활동의 첫날 도서반이 할 일에 대해 아주 짧고 쉽게 설명해 주었다.   “여러분 곁에는 책이 있다. 그 책 중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서 읽고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리면 가면 된다.”  그리고 선생님 본인이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서 자리를 잡고 읽는 것으로 시범을 보여주었다. 나는 책을 고르러 가는 아이들의 뒤를 따라 가서 한자로 제목이 씌어 있어서 아이들이 거의 손을 대지 않는 책 가운데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책은 ‘한국고전문학전집’ 같은 묵직한 제목 아래 편집된 수십 권의 시리즈물 가운데 한 권이었다.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고전 대부분이 그렇듯 책표지는 사람의 손을 거의 거치지 않아서 깨끗했다. 지은이는 박지원, 내가 처음으로 펴든 대목은 [허생전]이었다.    나이가 두 자리 숫자가 되면서 무협지에 빠지기 시작해서 전학 오기 전 국내 출간된 대부분의 무협지를 읽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 한문 문장을 번역한 예스러운 문체는 별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옆자리나 앞자리의 아이들이 읽고 있는 현대소설이 가볍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용 역시 익숙했다. 허생이라는 인물은 깊고 고요한 곳에 숨어 있으면서 실력을 쌓은 뒤에 일단 세상에 나갈 일이 생기자 한 바탕 멋지게 세상을 뒤흔들어 놓고서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무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었다.     [허생전] 다음에는 [호질], [양반전]도 있었다. 책이 꽤 두꺼웠으니 박지원의 저작 가운데 상당 부분이 책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책 속에 있는 주인공들은 내가 읽었던 수천 권의 무협지의 주인공과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무협지를 읽고 나면 주인공 이름 말고는 기억에 남는 게 없는데 박지원 소설은 주인공이 다음에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지고 내가 주인공이 되었더라면 어떻게 했을지 자꾸만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한두 번 씹으면 단맛이 다 빠져버리는 무협지와는 달리 그 책의 내용은 읽을수록 새로운 맛이 우러나왔다. 보석처럼 단단하고 품위 있는 문장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 정신세계가 무슨 보약을 먹은 듯이 한층 더 넓어지고 수준이 높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주일에 단 한 시간, 도서관에서 단 한 권의 책을 거듭 펴서 읽었을 뿐인데도.     중학교 3학년 1학기 특별활동 시간에 나는 몇 백년 전 글을 쓴 사람의 숨결이 글을 다리로 하여 건너와 느껴지는 경험을 처음 해보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척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읽으면 내 피와 살이 되는 고전, 맛있는 고전, 내가 재미를 들인 최초의 고전이 우리의 조상이 쓴 것이라는 데서 나오는 뿌듯함까지 맛볼 수 있었다.   3학년 2학기가 되었을 때 특별활동 시간은 없어졌다. 내가 1학기의 특별활동 시간에 읽은 것은 박지원의 책이 전부였다. 하지만 내가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하지 않은 특별활동 시간에 읽은 아주 특별한 그 책이 내 일생을 바꾸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 어떤 책을 계기로 인간의 지극한 정신문화, 그 높고 그윽한 세계에 닿고 그의 일원이 되는 것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는 행복을 안겨준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 나서 인간으로 살면서 인간다운 삶을 살고 드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길을 책이 보여준다. 책은 지구상에서 인간이라는 종만이 알고 있는, 진정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통로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하는지도 모른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1d1d131abfa08c16ac749828aca9cc07","as_of":"2025-11-05","payload":{"제목":"나는 가슴 벅찬 빚쟁이 입니다.","등록일":"2011-11-01","조회수":"1964","출판연도":"2011","칼럼 내용":"나는 빚쟁이다. 그 빚에 대한 내역을 자세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아동 청소년 작가다. 그 동안 꽤 여러 권의 책을 생산했다. 그러다보니 몇 년 전부터 한 달에도 대여섯 군데의 중고등학교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온다. 그런데 각 학교에 강연을 갈 때마다 내가 강연 말미에 학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꼭 하는 약속이 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중에서 이옥수 작가의 강연을 듣고 오늘부터 정말 열심히 책을 읽어서 여러분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합격했다면 언제든지 전화 하십시오. 그러면 달려 나가서 맛있는 밥을 사드리겠습니다.”  이 약속에 대한 인증으로 어떤 학생들은 아예 “꼭 같이 밥 먹읍시다.”. “꼭 밥 사주세요.”라는 글을 써 넣고 작가 사인을 받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당당히 합격한 학생 중에서 약속을 지키라고 전화가 걸려오는 때가 있다. 이런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 나가 주머니 털어서 밥을 사고 그 동안 어려운 중에서도 책을 읽은 사연들을 들을 땐......아, 이보다 더 기쁘고 즐겁고 가슴 벅찬 재회의 시간은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시라! 저 강원도 산골짝 (내가 태어났을 때 내 고향 울진은 강원도였다), 두메에서 태어난 주먹만한 아이(지금도 우리 오빠들은 주먹을 들어보이며 “요만했다”고 말한다) 어차피, 죽을 인생이라고 밀쳐두었다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가 되어서야 부랴부랴 출생신고를 하였지만, 배실배실 말라가기만 하던 천덕꾸러기 계집아이. 그 키 작고 보잘 것 없던 아이가 “기차타고 서울 가는” 원대한 꿈을 이루어냈을 뿐만이, 오늘날 작가가 되어 끊임없이 작품을 창작하고 수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건강한 몸으로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 독서의 힘이라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땐 혼자 다음과 같은 엉뚱한 생각을 하며 웃기도 한다. 만약 나라는 인간을 박제해서 유리관에 밀봉한 후, 어디 박물관 같은 곳에 세워둔다면 딱 두 글자만 관 위에 써 붙이면 되겠다. 그것은 바로 ‘독서’. 신체적 조건으로만 봐도 짧은 기럭지에 두루뭉술한 몸매, 내세울 것 없는 찌질한 성장 배경에도 불구하고, 결국 오늘 요만큼이라도 남 사는 만큼 모양세를 갖추고 살고 있는 것은 독서의 힘이었으니까! 그 동안 참, 무지하게 읽었다.(앞으로도 내 두 눈이 허락하는 한, 무지하게 읽을 것이고) 하루도 쉬지 않고, 목표를 정해서.     그렇다.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오고 간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서 독서를 통해 행복하고 멋진 삶을 일구어낸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다. ‘나’라는 미미한 한 작가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이 이렇게 독서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더 이상 누구의 무슨 증거가 필요할 것인가?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두메산골에 살다보니 어릴 때 좋은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 어릴 때 접할 수 있는 책이라야 교과서가 전부였고, 어쩌다 타지에서 흘러들어온 성인용 오락잡지, 그리고 만화방에 가야 볼 수 있는 만화와 잡다한 무협지가 내 독서의 출발이었다. 그때, 정말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것이 늘 내 마음에 한으로 남아서 지금도 만나는 학생들에게 좋은 책을 읽으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평균 아이큐가 세계에서 최고다.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은 유태인들보다도,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미국보다도 우리 국민들의 지능 지수가 높다고 한다. 또한 우리 인간의 뇌는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슈퍼컴퓨터보다 훨씬 더 용량을 가지고 있어서 그 용량을 최소로 하여도 최대 컴퓨터의 100만 배 이상의 정보처리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지능 지수를 가진 우리들이 최대 용량의 슈퍼 뇌 속에 양질의 '독서‘로 더할 수 없는 지식과 지혜를 꽉꽉 쟁여놓으면 이건, 정말 큰일 날 일이 생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런 큰일은 최고 지능과 최대 뇌용량을 온전히 가지고만 있는 것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최고의 지능을 이용하여 최대의 뇌용량 안에 얼마만한 지식과 지혜를 속속 쟁여놓는가에 따라서 그 결과는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어가는 구체적인 과정에서 나타나는 독서만의 힘이다.    아, 나는 생각만해도 찬란하고, 황홀하다. 최고의 지능과 독서의 만남, 최대의 뇌용량에 차곡차곡 쌓여갈 깊고 넓은 지식들. 그렇다, 이것이 바로 독서를 통해 이루어 갈 우리의 미래이고 꿈이다.   밥은 굶어도 책은 안 굶는다.   입력해야 출력된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이것을 나는 된장이나 고추장에 이는 구더기로 생각한다, 장에 가시가 일었다 하는 말을 적용하여)가 생긴다.    독서는 내 인생에 대한 예의다.  이처럼 나는, 독서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 누가 한 말이건 꿀처럼 달게 받아들이며 내 가슴에 꼭 품고 다닌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꿈을 향한 지름길은 독서밖엔 없더라고 말한다. 이건 어디서 들은 말이 아닌, 내 스스로가 뼈저리게 느껴왔고, 체험하고, 온 몸으로 체감하면서 살고 있는 말이다.   혹,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오해하지 말기를. 뭐 그리 대단한 작가라고 주제넙게 독서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느냐고. 그러나 생각해보시라, 슈퍼에서 세수 비누 한 장을 사서 써 보고도 좋은 것은 친구에게 권하는 법, 내 인생을 오늘 날, 요만큼이라도 만들어 준 독서라면 사랑하는 그대에게 권하고 자랑함이 마땅하지 아니한가!"},"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1e21a0b8d9bd8c95e8126074f39962a6","as_of":"2025-11-05","payload":{"제목":"진로 진학의 왕도 독서","등록일":"2015-10-07","조회수":"1154","출판연도":"2015","칼럼 내용":"진로 진학의 왕도 독서  내 어렸을 때 꿈은 과학자였다. 이 과학자의 꿈 덕분에 중3 때 모형비행기를 만들면서 비행기와 친숙하게 되었고, 비행기와 관련된 진로를 고민하다가 고2 때 조종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중학생 시절에는 과학자들의 위인전을 많이 읽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에디슨과 라이트형제, 노벨, 뢴트겐, 아인슈타인, 장영실과 최무선 등이었다. 또 고등학교 시절 항공 관련 진로에 관심이 많았을 때는 1·2차 세계대전과 항공역사 책을 읽으면서 나의 꿈을 구체화했다.  흔히들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정보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좀 더 상세한 정보를 알아보려면 시간이 꽤 걸리고, 쉽게 막히는 경우를 흔히 접하게 된다. ‘정보의 바다’라는 말이 무색해 보인다. 그저 정보나 지식 검색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책은 그렇지 않다.   청소년 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이 시절 친구는 누구를 사귀는지, 어떤 선생님을 만나는지, 또 어떤 책을 읽었는지 등이 청소년의 미래를 좌지우지한다고 할 수 있다. 나도 취미활동과 독서가 꿈을 키우고 진로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독서는 청소년들에게 상상의 날개를 맘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물론 각자가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삶과 생각, 경험 등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청소년 시절의 독서가 다양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본인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최근 들어 대학교에 진학할 때 수능점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감소하는 추세다. 수시모집이나 입학사정관 제도 등이 그렇고 면접과 논술, 자기소개서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경향도 그렇다. 학교성적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이는 기업에서 직원을 공개 채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면접과 자기소개서는 필수가 된 지 오래됐고, 한 발 더 나아가 5분 스피치나 공개토론을 하는 기업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나는 민항기장으로 직업특성상 외국에 자주 간다. 외국에 갔을 때 호텔에서 묵게 되는데 쉬는 시간에 호텔 수영장을 자주 간다. 호텔 수영장에 가면 우리나라와는 달리 수영장 안에서 수영복을 입고 책을 읽는 외국인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여행 중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독서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또 지하철 안에서도 호텔수영장과 같은 독서 분위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수영장과 지하철에서 이런 모습을 언제 볼 수 있을까!  우리나라 많은 청소년들이 다른 나라와 같이 독서가 몸에 배었으면 좋겠고, 독서를 통해 상상의 날개를 펴고 성층권 넘어 광활한 우주로 본인의 끼를 맘껏 발산했으면 더욱 좋겠다."},"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1e2b11420e4fe8482febedd194f30563","as_of":"2025-11-05","payload":{"제목":"홍자성의 채근담을 읽으며 이겨낸 재수생활","등록일":"2014-06-20","조회수":"2945","출판연도":"2014","칼럼 내용":"만물이 푸르른 계절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들녘에는 무더위가 찾아 들었다. 중3과 고3 수험생들은 슬럼프에 빠지기 쉬운 시기이다. 그들의 마음에 도움이 될 한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칼럼을 쓰는 저자에겐 은인 같았던 책, 홍자성의 채근담이다.  한참 성적을 끌어올리며 보냈던 20년 전의 고3 시절, 무더위에 밤마다 설치며 몽롱한 상태에서 공부를 했고 결국 원했던 대학을 가지 못하고 낙방했다. 당시엔 모든 것이 막막하고 괴로웠다. 모의고사에서 전국 64등까지 했기에 원하는 대학은 당연한 것이고, 20살 대학생활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계획에도 없던 재수 생활은 마지막 청소년 시절을 스스로 고민케 했다. 세상을 다시 보고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바로 채근담으로."},"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1f92e7d62b1e2f36ee6fadecdb348f85","as_of":"2025-11-05","payload":{"제목":"읽고, 생각하고, 표현하라 ...","등록일":"2011-07-04","조회수":"1056","출판연도":"2011","칼럼 내용":"책과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책 한권을 쓰기 위해 저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다듬고 또 다듬으며, 수많은 참고서적과 자료들을 뒤져서 얻은 지식과 열정의 정화가 책으로 만들어진다. 물론, 책이 많다 보니 그렇지 않은 책들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위 고전이라고 불리우는 책들은 정말 인류역사의 정화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독서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보는 연습을 하는 것은 개인의 미래를 위해서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런 정도의 이야기만 한다면 다른 분들의 독서추천하는 글과 비슷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두 가지를 더 이야기하고 싶다. 일단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내용을 머릿속에 주입하는 과정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책에 있는 내용을 찬찬히 다시 생각해보는 과정을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더구나 최근에는 인터넷의 발달로 책에서 이야기한 내용에 대하여 더욱 풍부한 조사가 가능하다. 특히 마음에 드는 책이 있고, 책에서 나온 이야기 중에서 자신의 공감 끌어내는 부분이 있다면 주변 지식이나 그와 관련된 이야기, 반론이 되는 이야기 등을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라.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해당되는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열정을 가질 수 있다면 단순히 한 번만 읽고 넘어가는 것에 비해서 훨씬 기억에도 많이 남고, 자신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며, 자신의 미래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스토리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정의 조각의 일부로 만드는 과정이 바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이렇게 열정을 가지고 좋아하게 된 책의 이야기 조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라고 권하고 싶다. 많은 책을 읽더라도, 이것이 자신의 머리와 마음을 거쳐서 또 다른 조각의 이야기로 만들어져서 나온다면 자신 만의 것으로 체화될 수 있다. 오늘날 소위 웹 2.0 이라고 이야기하는 다양한 기술들의 도움을 빌린다면 이런 작업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수행할 수 있다. 필자는 블로그를 2008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통해 얻은 작은 이야기와 생각의 조각을 매일 한 꼭지 자신의 글로 옮기는 일종의 공공 일기장으로 블로그를 활용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이 일기장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더니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필자가 읽은 이야기의 조각이 진화해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블로그에 길게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면, 간단히 짧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올릴 수 있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이나, 좋은 구절 등을 한 마디 씩 올리고 여러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다 보면 책에서 습득한 지식이나 감동이 배가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지식과 삶에 대한 고민을 한 흔적은 자신의 포트폴리오로 남아서 언젠가 남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인생에 대해서 설명할 때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미래의 세계에는 창의적인 인재를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시도를 해 보아야 한다. 과거처럼 지식만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세상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표현하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나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나를 도와줄 수 있는 협력자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미래의 직업을 생각할 때에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어떤 방식으로 생업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데,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와 해당 재능만으로는 부족하다.   책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인류의 지혜를 이해하고, 이렇게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과 세상의 진실된 가치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파헤쳐보자.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적 가치에 대해서 고민하고, 이런 고민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 연습을 해 본다면, 여러분들은 미래사회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200f77c1c0635ab51dd121b567d33d5c","as_of":"2025-11-05","payload":{"제목":"즐거운 연극 세계로의 초대","등록일":"2016-11-07","조회수":"627","출판연도":"2016","칼럼 내용":"읽기란 책만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읽기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보는 것, 정독하는 것, 상상해 보는 것, 분석적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그래서 책뿐만 아니라 시청각이 포함된 오감각적인 모든 분야도 읽기가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히치콕 영화 읽기, 햄릿 연극 읽기, 피카소 미술 읽기, 모차르트 음악 읽기 등 온갖 장르를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뭐든 열심히 읽으면 읽힌다. 사람의 마음까지도…….    나는 이번 기회에 청소년들에게 특별히 연극 읽기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프랑스문학 전공교수이면서 2009년에 창단한 극단 프랑코포니 대표로서 동시대 프랑스어권 작품을 번역하여 대학로에서 매년 1편씩 공연을 제작하고 있음). 연극은 문학에 속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술, 음악, 영상, 무용 등 총체적인 것을 아우르고 있는 폭넓은 분야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읽는 책 중에서도 가장 안 읽은 장르가 연극 텍스트, 희곡이 아닌가 싶다. 초중고 국어 교육에서, 비중이 가장 약한 분야가 연극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말로 된 책에서 서술체와 대화체가 나올 때 구별이 되도록 자연스럽게 읽는 사람을 보기가 사실 쉽지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흔히들 연극이란,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자연스럽거나 사실이 아니고 흉내 내고, 꾸미고, 인위적인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나 소설이 우리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듯이 연극도 우리 현실과 아주 가까이 있으면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알고 보면 그리 어려운 장르는 아니다. 접해 보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그 세계를 알면 알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재미있는 무엇이 있다.      연극 읽기에 어떤 재미가 있을까? 먼저 연극 책, 희곡을 한번 펴 보자. 어떻게 쓰여 있는가? 간단히 말해, 등장인물의 행동을 지시하거나 상황을 알려 주는 지문이 있고, 등장인물 간에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체가 있다. 작가와 작품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희곡에는 빈칸이 많다. 빈칸은 독자가 상상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그 인물을 맡은 배우가 어떻게 극적 공간을 느끼고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발성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준비하게끔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희곡은 눈으로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대에서 상연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글 자체에 무대와 등장인물들을 위해 설정해 놓은 시공간과 움직임, 입체적인 스케일이 숨겨져 있다. 시나 소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읽고 상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로 분한 배우가 실제로 무대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것이다.     그런 다음 무대 읽기를 하기 위해 공연을 보러 가 보자. 희곡을 먼저 읽고 공연을 보러 갈 수도 있고, 공연을 본 다음에 희곡을 읽을 수도 있다. 희곡을 먼저 읽고 공연을 보면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상상한 것이 어떻게 무대화되었는지를 살펴보면서 집중하게 된다. 반대로, 공연을 본 다음 희곡을 읽으면 무대에서 본 멋진 장면이 책에서는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확인하면서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박물관, 미술관에 가고, 연주회도 보러 가듯이 다양한 문화를 접하려면 영화도, 연극도 보러 다녀야 한다. 그중 가장 보러 가는 습관이 안 된 분야가 연극인 것 같다. 한번이라도 가 본 적이 있으면 극장에 가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가게 된다. 그러나 한 번도 가 보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공연장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한편 생각해 보면, 연극만큼 인간의 희로애락을 직접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예술도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영화는 영화대로 멋진 스케일을 가지고 있지만, 연극은 영화처럼 필름이나 CD, 파일로 만들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복제 가능한 예술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배우)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관객 앞에서 라이브로 공연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일 하는 공연이 똑같지 않다. 어떻게 하면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서로 보지 않더라도 연결하고 지낼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하이 테크닉의 시대에, 연극은 어쩌면 아주 불편한 예술일지도 모른다. 영화처럼 상영 시간이 하루에 여러 번 있는 것도 아니고 겨우 하루 한번 하는 공연을 같은 장소에 같은 시간에 모여 같이 봐야 하니까.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수공업적인 예술인 연극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만드는 것이다.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은 작가, 연출가, 배우를 비롯하여 필수 스태프들인 무대, 조명, 의상, 분장, 조연출 등 수많은 예술가가 모여 멋진 무대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아무것도 없는 평면의 인쇄체 글을 가지고 인간과 인간이 머리를 맞대고 상상하며 입체를 만들고 환상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작가, 연출가, 배우, 스태프들이 만나 아무리 훌륭한 작품을 만든다 하더라도 마지막으로 관객이 없으면 공연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연의 완성은 관객과 함께이다. 관객의 유무, 호응도에 따라 공연이 살았다 죽었다 한다. 이 모든 구성 요소가 다 들어가 배합되고 일체가 되어야 성공적인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모여서 해야 하는 가장 살아 있는, 인간적인 놀이가 연극이다. 이런 멋진 연극 세계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몰라도 호기심을 가지고 희곡도 읽고, 무대도 읽으면서 환상적인 연극 세계로 우리 함께 떠나가 보자!    임혜경:  현재 숙명여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대학원장.  극단 프랑코포니(불어권) 대표. 번역가, 연극평론가. 프랑스 정부 교육공로훈장 수훈(PA)"},"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record_key":"h:20de01a102867fd5128d136aedd34e82","as_of":"2025-11-05","payload":{"제목":"새로운 세계로의 여행","등록일":"2014-03-19","조회수":"2905","출판연도":"2014","칼럼 내용":"학창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그리 싸움을 잘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원래 내성적인 성격에 말주변도 없어서 친구도 많지 않았다. 반면 모험을 좋아했고 새로운 세계를 동경했다. 옥상에 누워 뭉게구름들을 보면서 저 하늘을 뚫고 올라가면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상상하기도 했고 외국어를 쓰는 먼 나라를 활보하며 이국적인 삶을 사는 꿈을 꿔보기도 했다. 제한된 나의 현실에서 벗어나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나를 데려가 준 것은 바로 책이었다.   책을 좋아하게 된 몇 가지 일화가 있다. 친 누나가 어느 퀴즈 프로그램을 보러 방송국에 갔다가 입상을 해서 소설과 전기를 비롯한 몇몇 전집을 받아온 일이 있었다.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혼자서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나에게 그 책들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담임선생님 추천으로 어린이도서관 겨울방학 프로그램에 참가한 일도 있었다. 사직공원에 있던 어린이도서관은 내가 가 본 첫 번째 도서관이었다. 개가식 열람실에는 내가 좋아했던 SF공상과학 소설책이 책장 가득 꽂혀 있었고 명작추리소설이나 과학백과사전 등등 새로운 세계로 손짓하는 책들이 넘실거렸다. 열람실을 훑어가며 감탄사를 쏟아내던 그 때의 흥분을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 후 틈만 나면 도서관에 놀러가서 이 책 저 책을 꺼내 들고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재미를 만끽하곤 했다.\"\"\"\""},"last_seen":"2026-08-24 06:39:17.364161+09"}]}